EBSH(Enneagram Based Spiritual Healing)이란?

영적 치유에 기반한, 양자의학이론으로 과학화하여 성서로 설명하는 치유 에니어그램

EBSH(Enneagram Based Spiritual Healing)은 생명의 혈이 흐르게 해 주는 생명의 빛, 생기, 생명파동정보 – 영성이 어떻게 자신의 눈빛과 얼굴로 드러나는가를 성서와 양자 물리학, 양자 생물학 이론으로 설명해 주는 과학화된 프로그램입니다. 또한 자신의 얼굴 안에 숨어 있는 생명의 빛, 생기, 생명파동정보 – 자신의 영성을 알아차리고 실행함으로써 몸, 마음의 치유와 더불어 재능도 살아난다는 것을 성서와 양자 의학이론으로 설명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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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얼굴 안에 숨은 영성과 재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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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닐스 보어(Niels Bohr)의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파동이 입자로 드러날 때는 오직 관찰자의 시선에 담긴 의식에너지가 개입할 때라는 것입니다. 관찰자의 시선에 담긴 의식에너지는 스스로 힘을 가지고 흐르는 입자의 파동으로서 관찰대상의 몸에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각자의 시선에 담긴 의식에너지로 얽혀 있는 관계 안의 생명입니다.

양자 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이 우주에 가득한 태초 관찰자의 시선에 담긴 의식에너지, 인간의 지력을 초월한 초월의식의 자기조직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이 우주에 가득한 초월의식의 자기조직이라는 의미는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이 우주에 사랑과 생명의 힘을 부여하여 다스리는 태초 관찰자 – 임마누엘 하느님의 아홉 시선에 담긴 로고스, 생명의 빛, 생명파동정보인 생명의식에너지의 자기조직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체는 마치 러시아 인형처럼 내 안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는 또 다른 시선의 내가 있고, 그러한 나를 관찰하고 있는 또 다른 시선의 내가 있는데, 그렇게 내 안의 시선을 쫓아가다 보면 스스로 존재하면서 작용하고 있는 태초 관찰자 하느님의 아홉 시선 - 생명의 궁극적 원인이자 본질이며 실재로서 나의 영성이 되어 나의 얼굴 안에 거처를 마련하신 임마누엘 하느님의 아홉 시선에 담긴 로고스, 생명의 빛, 생명파동정보인 생명의식에너지를 만납니다.

진리이고, 사랑이며 선함 자체이신 임마누엘 하느님의 아홉 시선에 담긴 로고스, 생명의 빛, 생명파동정보인 아홉 생명의식에너지는 스스로 힘을 가지고 흐르는 입자의 파동, 의식에너지의 기원이 되어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나의 눈빛과 얼굴빛을 빚어냅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의 시선 중 강함의 시선으로부터 온 눈빛은 든든한 눈빛으로, 기쁨의 시선으로부터 온 눈빛은 경쾌한 눈빛으로, 사랑의 시선으로부터 온 눈빛은 따스한 눈빛으로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를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나를 빚어낸 태초 관찰자의 시선, 임마누엘 하느님의 시선에 대해서 성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으시고 도우시는 분 두려워하지 마라. 나의 종 야곱아” -이사야 44, 2
“만군의 주님께서 나에게 권위를 주어 파견하신 그분께서 너희를 약탈한 민족들을 두고 말씀하신다. 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다.” - 즈카르야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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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 관찰자 임마누엘 하느님의 아홉 시선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 생명의식에너지는 하느님의 아홉 시선을 연결하는 연결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은 피부조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아홉 시선에 담긴 생명의식에너지로부터 와서 각 얼굴 안에 심어진 영성 - 영적 평화, 영적 기쁨, 영적 사랑이 가진 ‘신성의식’ 안에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건강하게 실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선악을 분별하겠다는 자기중심적 거친 힘, 물질입자의 힘으로 분리되어 태어난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은 자기중심적인 거친 힘에 따른 ‘일반의식’ 안에서는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부와 명예와 권력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 수치심, 우울, 슬픔, 분노, 원한 등의 부정적 정서에 갇혀 질병 안에서 흙의 먼지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존재방식이 있습니다. 생명의 실재 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존재방식과 질병 안에서 흙의 먼지를 향해서 질주하고 있는 환(幻)의 생명을 살아가는 존재방식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은 하느님의 아홉 시선을 연결하는 각 얼굴 안에 심어진 하느님의 마음 - ‘신성의식’ 안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건강하게 실재하기 보다는 자기중심적 거친 물질입자의 힘-’일반의식’ 안에서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부와 명예와 권력이라는 신기루를 좇아가는 동안 부패되어 질병 안에서 흙의 먼지를 향한 움직임, 환(幻)의 생명으로 살아가는데 구름이 태양 빛을 가리듯 자기중심적 거친 물질입자의 힘이 하느님의 마음인 ‘신성의식’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기업인이나 연예인, 정치인들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암이나 대사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생명은 생명의 실재인 하느님의 시선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인 생명의식에너지, 생명의 빛, 생명파동정보와의 일치 여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지속하는 환(幻)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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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실재와 환(幻) – 존재적 영적 생명과 육체적 심리적 생명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보면 태어날 때부터 깜깜한 동굴이라는 세상에서 태어난 인간은 자신과 세상이라는 동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등 뒤로 비추는 불빛에 의해 동굴 벽에 비춰지는 자신들의 그림자를 통해서만 자신들과 세상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내 힘으로 선악을 분별하겠다는 자기중심적 거친 물질입자의 힘으로 분리되어 태어난 인간의 깜깜한 눈은 자신의 얼굴이 하느님의 시선을 연결하는 하느님의 눈동자에 서린 빛의 생명인 줄 모릅니다. 선악과를 먹고 자신의 힘으로 선악을 분별하겠다는 자기중심적 거친 물질입자의 힘으로 굳어진 깜깜한 눈은 자신을 사랑과 생명의 힘으로 비추고 계시는 생명의 빛, 그 빛의 그림자를 통해서만 세상을 세상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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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과 생명의 힘으로 비추고 있는 생명의 빛, 그 빛의 그림자는 자신의 생명을 거슬러 가는 자신의 죄입니다. 선악 분별을 위한 인간의 깜깜한 눈은 다른 가치로부터 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자신의 죄, 자신의 생명을 침해하는 악으로 비추어 내면서 서로 반목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불교에서는 사람은 자신의 죄, 자신의 까르마에 따른 업식을 가지고 태어나서 자신의 죄로 세상을 보고 듣는다고 말합니다.

선악 분별을 위한 인간의 깜깜한 눈은 자신의 죄를 상대방을 통해서 비추어 내는 자신의 그림자 투사에 따른 실재의 기만적 환영 안에서 두려움, 수치심, 우울, 슬픔, 분노, 원한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흔들립니다. 그림자 투사에 따른 부정적 감정은 감정의 종류에 따라 특정한 장기의 신체파동정보를 오염시켜 질병을 앓게 만듭니다. 예로부터 슬픔은 폐를, 정화된 내적 기쁨이 아닌 거짓 기쁨은 심장을, 화는 간을 병들게 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사랑과 생명의 질서 안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공존해야 할 인간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선악 분별을 위한 인간의 깜깜한 눈은 서로를 자신의 죄로 비추어 내면서 낙원을 향한 서로의 꿈을 짓밟으며 흙의 먼지로 돌아가게 됩니다. 선악과를 먹고 태어난 원죄의 결과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자신의 그림자 투사에 따른 인식의 감옥에서 잠들어 있는 의식으로부터 일어나는 기계적 자동 반응입니다. 그러나 각자는 자신의 또렷한 의식으로부터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스스로 인식의 감옥에서 잠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도 자신을 강제로 자유롭게 하거나 해방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도덕성 발달 이론으로 알려진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는 심리학계의 거인이었지만 그의 높은 도덕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했습니다. 콜버그는 힘의 중심이 머리에 있는 머리중심 사람입니다. 머리중심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선물인 진리의 가치 수행을 위한 집착과 충동, 강박에 갇힐 때 자신의 그림자 투사에 따라 ‘거짓’이라는 인식 틀로 문제를 확대하고 결국에는 어두운 쪽으로 각본을 쓰게 되는 기계적 자동반응을 가지고 있습니다. 콜 버그가 자신의 그림자 투사에 따른 실재의 기만적 환영이 만들어 낸 인식의 감옥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그는 자살하는 대신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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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幻)과의 동일시에서 생명의 실재로 존재하기 위한 알아차림

인간은 하느님의 아홉 시선을 연결하는 연결 안에서 자신의 소명과 역할을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다 함께 공존하게 되는 연결로서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선악을 분별해 보겠다고 태어난 바보 같은 육체적 심리적 생명의 깜깜한 눈은 자신을 사랑과 생명의 힘으로 비추고 있는 생명의 빛 안에서 자신은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선악분별을 위한 인간의 깜깜한 눈은 대상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보는 그림자 투사로부터 해방되기도 어렵고, 투사에 따른 인식과 인식에서 오는 두려움, 수치심, 화 등의 부정적 정서로부터 오는 질병에서 놓여나기도 힘듭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 놓일 때 스트레스 호르몬의 작용으로 암이 손쓸 수 없을 만큼 급속히 번져서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감정의 동요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내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상황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오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마음은 별처럼 또렷하고 몸은 고요해지는 이완 반응이 일어나 몸은 생명의 질서 안에서 살아납니다.

우리는 같은 사안을 두고 그 일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을 나쁘게 증폭시키는가 혹은 축소하는가는 한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른 그림자 투사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투사와 투사에 따른 실재의 기만적 환영을 알아차리는데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의 희랍어 메타노이아(metanoia)의 의미는 meta: a position beyond something + noeo: to perceive, to think the result of observing이다. 관찰 결과로서의 생각 관점을 넘어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회개를 통하여 그림자 투사로부터 온 부정적 정서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본질인 고요 평화 안에서 빛의 시선을 가진 빛의 생명으로 현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뇌는 습관적으로 관찰 대상에게서 오는 파동(wave) 정보를 자신의 경험과 기억이 저장된 세포 유전자의 기억 정보에 따른 연산 작용(투사)으로 상을 만들어 망막에 비춰내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기억 정화로 뇌 신경회로가 변하지 않는 이상 상처는 무한 반복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기억 정화와 함께 뇌 신경회로가 변하기까지 8주간의 “알아차림”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뇌 뇌신경과학자들의 의견입니다.

그러나 8주간으로도 선악분별을 위한 자기중심적 거친 힘으로 굳어진 물질입자의 모습으로 태어난 우리들 육체적 심리적 생명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어렵습니다. 우리들 세포 유전자의 DNA는 태초의 창조 질서와 낙원의 기억, 그리고 낙원으로부터 쫓겨난 이래로 자신의 그림자 투사에 따른 실재의 기만적 환영이 만들어낸 진화와 성장의 기억 그리고 무수한 세대를 거쳐 이어온 문화와 습관, 가족력까지 그러한 전 과정의 경험 안에서 일어났던 상처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기억이 정화되려면 그 모든 상처가 발생하도록 허락했던 자기중심적 거친 힘으로 굳어진 물질입자의 모습을 한 우리들 육체적 심리적 생명이 깨어나는 환골탈태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알아차림”의 과정은 뇌의 생존전략에 따른 실재의 기만적 환영이 불러온 부정적 정서로 부패할 수밖에 없도록 조건 지어진 육체적 심리적 생명으로 살아가는 한 평생을 지속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EBSH 8주간 프로그램은 뇌의 생존전략에 따른 실재의 기만적 환영이 불러온 부정적 정서로 오염된 신체파동정보를 생명파동정보와 연결시켜주는 기도수련과 기도수련을 통한 파동에너지치료도 겸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치유는 하느님의 시선에 담긴 생명의 빛, 생명파동정보와 연결시켜주는 기도수련을 통한 파동에너지치료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파동에너지치료의 정확한 의미는 자신의 신체파동정보를 하느님의 시선에 담긴 생명의 빛, 생명파동정보와 일치시키려는 지속적인 기도수련으로 자신의 몸 안에 내재된 치유기전을 깨워 스스로를 치료한다는 의미입니다.